이동국 은퇴 정리
이동국은 26일 자기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현역 은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동국은 "아쉬움과 고마움이 함께 했던 올 시즌을 끝으로 저는 제 인생의 대부분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왜 일까요?
이어 "은퇴가 끝이 아닌 새롭게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전북 구단은 "23년간 프로선수로서 활약한 이동국이 K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11월 1일 은퇴 경기를 치른다"라고 발표했습니다.
1998년 포항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2009년 전북 이적 후 K리그 우승 7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등을 이뤄냈으며 K리그 통산 최다골인 228골을 기록중이라고 합니다.
이동국은 은퇴 경기에 앞서 오는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동국은 1998년 프로 데뷔와 동시에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습니다.
만 19세의 나이에 1998 프랑스월드컵에 깜짝 발탁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한국축구는 1무 2패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0-5 참패를 당했던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교체출장하여 주눅든 선배들을 대신하여 패기 넘치는 플레이로 스타군단 네덜란드의 골문을 위협하던 이동국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동국은 이후 '테리우스' 안정환'-앙팡 테리블' 고종수와 이른바 '신세대 트로이카'로 불리며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할 것 같았던 이동국의 20대 시절은 오히려 부침의 지속이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황선홍-최용수-차두리 등 쟁쟁한 공격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최종엔트리에 낙마했고 절치부심하여 주전출장이 유력했던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본선 개막을 앞두고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고 또다시 출전이 좌절됐습니다.
이밖에도 병역비리 파동과 독일-영국 등 유럽진출에서의 연이은 실패 2007년 아시안컵에서의 음주 파동과 국가대표 징계 2008년 국내 복귀와 성남에서의 방출 등 이동국의 축구인생에 두고두고 남을 '흑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어느덧 한물간 선수로 잊힐 위기에 놓였던 이동국은 2009년 전북에서 '평생의 은인'이 된 최강희 감독을 만나며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자기자신을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최 감독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동국은 30대의 나이에 축구인생의 진정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동국은 전북 입단 이후 10년 지속 두 자릿수 득점(2009-2018년) 기록을 세웠고 2019년에도 9골 2020년에는 4골을 기록하고 불혹의 나이까지도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전북에 머문 지난 12시즌 동안 7회의 K리그 우승과 1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순간에 모두 함께한 선수는 오로지 이동국 뿐이라고 합니다.
준비한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엔 더 알찬 내용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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